광고
광고

[특별기고]유청장, '세병관'이 아름답소?
경복궁의 '경회루'가 아름답소?

진의장 전 통영시장 | 기사입력 1970/01/01 [09:00]

[특별기고]유청장, '세병관'이 아름답소?
경복궁의 '경회루'가 아름답소?

진의장 전 통영시장 | 입력 : 1970/01/01 [09:00]

세병관 없는 통영은 상상하기가 어렵다.

 
만약 세병관이 없었다면, 어촌의 한 포구에 지나지 않으며 큰 역사와 12공방으로 이어지는 통영의 문화·예술은 없었을 것이다.

 
도시 디자인 측면에서도 세병관은 기가 막힌 위치에 자리잡고 있다. 세병관의 왼쪽은 동피랑과 남방산, 오른쪽은 서피랑과 항남동으로 이어진다.

 
전체적으로 게(憩)의 복장에 해당하고 오른편과 왼편의 다리는 집게다리로서의 공주섬을 구슬로 어루러고 있는 형상이다.

 
1604년 제6대 통제사 이경준 장군은 마침 통제영에 감사 나온 좌의정 한음 이덕형에게, 이 자리는 지형상 무(武)가 강한 곳으로 ‘삼도수군 통제영’을 이곳에 설치해야 한다고 건의 했으며, 1604년 음력 9월 9일 양력 10월 1일 선조의 윤허를 받았다고 한다.

 
그리하여 통영은 500년 이조 역사에서 유일하게 정부 주도의 계획도시로 탄생하게 되었으며 뚜렷한 생일을 갖게된 것이다.

 
세병관은 1898년 폐영될 때까지 292년간 존속 하였으며, 근 300년 동안 우리 통영은 경상, 전라, 충청의 삼도를 호령 함으로써 남해안의 중심도시가 된 것이다.

 
일제는 우리 민족의 정기(精氣)를 죽이기 위해 氣가 있는 지형에는 온갖 해작질을 했었다. 武가 충만한 이곳 통영을 그대로 둘리가 없었다.

 
통제영 관아 부속건물 100여체를 뜯어 버리고, 앞서 말한 게의 오른쪽 다리를 분질러 그곳에다 항남동 매립지를 만들었던 것이다.

 
100여체의 세병관 부속건물을 뜯어낸 자리에는 통영초등학교, 세무서, 법원, 검찰청 그리고 일본이 신사와 일본절을 들어 않혀 놓은 것이다.

 
덕분에 필자도 통영 세병관에서 공부를 할 수 있었고, 세병관 정기를 받아서 인지 통영국민학교에는 윤이상·박경리·김춘수·김상옥·유치진·유치환·김용식·김봉익·이일규 등 많은 인재들이 배출된 듯 하다.

 
필자는 재직시 많은 관심을 가지고 틈만 나면 세병관 복원에 대해 챙겨 보았었다.

 
배를 타고 통영항에 들어 왔을 때 보이는 것은 세병관 지붕 뿐이다.


세병관 정문 앞에서 일직선을 팅기면 눈에 걸리는 문화마당의 화장실이 걸리고, 더 연장해 보면 정확히 공주섬을 만나게 된다. 옛 선인들이 말한 구슬을 어루는 게의 형상임을 알 수 있었다.

 
필자는 일제가 부수어 놓은 게의 오른쪽 다리를 복원하고, 그 자리에다 이순신 장군의 광장을 만들고 막힌 세병관 앞을 튀우는 일을 시작했다.

 
일차사업으로 동인당 한의원 일대를 뜯으려면 예산이 얼마나 소요되겠는냐고 물었더니, 80억 정도면 되겠다고 하였다. 

 
당시 유홍준 문화제청장은 본래 명지대학 교수였다. 마침 명지대학 총장 유영구 박사의 절친한 친구이며 통영의 역사와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서울의 명지빌딩 15층에 ‘한산대첩기념사업회 서울지소’를 만들어 준 분이였다. 

 

▲ 좌측이 조선의 왕이 호수를 보며 휴식을 즐겼다는 '경회루'
'    우측이 삼도수군 통제영 중심건물 '세병관'    © TYN



유영구 박사의 주선으로 유청장을 만날 수 있었다. 그 자리에서 필자는 단도 직입적으로 “유청장, 세병관이 아름답소? 경북궁의 경회루가 아름답소?” 하고 물었다. 그리고 80억을 지원해 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유청장은 “통영 국회의원을 시켜 세병관은 국보 중에서도 바다를 지킨 호국의 국보인데, 이런 국보가 앞이 꽉 막혀서 되겠는냐고 저를 야단을 치도록 하십시요“라고 해 지원에 대한 강한 뜻을 피력하기도 한 일화가 있다.

 
마침 통제영 복원 사업비가 잘 조정이 되어서 세병관의 앞을 튀우게 된 것이다.

 
그런데 지난 14일 통제영 복원 준공행사에 가 보았더니, 뜯어 놓은 그 자리에 철제 건물 주차장을 지어 도로 막아 놓았으니 어처구니가 없어 할 말을 잊어 버렸다.

 
유홍준 청장이 보면 사기 당한 느낌으로 허탈해 할 것이다. 행사에 나온 어느 시민이 “두루마기 입은 선비에게 청바지를 입힌 꼴이구나” 하는 푸념이 아지도 내 귀에 쟁쟁하다.

 
통영의 정체성을 살릴 정신들이 잘 결집이 된다면 언젠가는 세병관이 강구안 까지 확 튀어져 연결될 날이 올 것이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