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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역사적 인물인가? 神인가?
성공회 박태식 신부가 말하는 ‘예수’는

‘나사렛 예수’로 불려진 이유
非그리스고교 문헌 7종에 등장...마술쟁이.나사렛 도당으로 기록
예수의 ‘동정녀 마리아 탄생’...그 시대의 민간 신앙과 관련

발행인 김병록 | 기사입력 2013/12/25 [20:23]

예수는 역사적 인물인가? 神인가?
성공회 박태식 신부가 말하는 ‘예수’는

‘나사렛 예수’로 불려진 이유
非그리스고교 문헌 7종에 등장...마술쟁이.나사렛 도당으로 기록
예수의 ‘동정녀 마리아 탄생’...그 시대의 민간 신앙과 관련

발행인 김병록 | 입력 : 2013/12/25 [20:23]

12월 25일 크리스마스(성탄절),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이다. 

 
세계 최대의 종교이자 베스트 셀러인 ‘성경’을 가르치는 그리스도교 그 창시자 예수는 2000년 동안 탐구되어 오지만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필자는 크리스챤(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종교의 믿음을 가진 사람) 이면서도 불구하고 예수에 대한 깊이가 부족하다고 스스로 생각하며 한 동안 그 믿음 소홀한 것에서 비롯되어, 종교인으로서 죄책감, 복잡한 속내를 달래기 위해 평소 무작정 즐겨 찾는 벽방산을 올랐다.

 
온갖 잡념을 정상을 향하면서 일부 해소를 하고, 평탄한 하산길에 꺼네 들은 필자의 애장품 테블릿 pc(전화 겸용)에 접속과 동시에 필자를 눈을 휘둥거라지게 만드는 ‘십자가 못 박힌 예수...황제를 사칭한 罪라는 제목의 글이 필자의 글을 멈추게 했다.

 
필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가지고 있음에도 예수에 대한 부족한 지식, 평소 필자가 가진 예수의 대한 신비가 궁금증으로 돌변했다. 이는 필자의 믿음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하는 대목이다.

 
이브인 전달 필자는 평소 존경하는 고향 선배와 절친인 벗과 소주 한잔을 곁들인 대화가 한창일 때, 자리한 선배와 벗은 특별한 날에 당연히 예수에 대한 얘기로 화제의 꽃을 피웠다.

 
필자에 비해 어느 종교인 보다도 박식한 두사람이 예수의 대한 깊이를 알 수 있는 말들이 오가고 있을 때, 필자는 때 아닌 우리가 믿고 있는 예수는 역사적 인물일 것이라는 생각에 대뜸 필자는 “예수는 역사성에서 찾아야 한다”라는 내 볕고 말았다.

 
그 말이 독실한 크리스챤들은 어떻게 받아 들일지 알 수 없다. 하지만 필자가 접한 글의 내용에 “역사의 예수”라는 구절이 전날 선배와 벗이 함께한 자리에서 그 역사성에 대한 내볕은 필자의 말과 흡사해 그 글에 필자는 호기심에 눈을 뗄 수가 없어, 평소 필자가 가진 의문에 대해 이 글을 기준으로 독자들과 함께 공감해 보고자 나름의 일정은 뒤로한채 곧바로 사무실로 가 이 글을 쓰고 있다.

 
이 글은 30년 동안 예수 공부를 한 독일 괴팅겐 대학 신약학 박사인 박태식 신부가 역사적 인물로서의 예수를 조명한 ‘예수’(들녘)를 펴낸 박 신부와의 그 간의 예수의 베일에 관한 궁금증 일부에 대한 인터뷰 형식이다.

 
신학에 대한 부족한 지식에 필자가 말한 ‘역사적 인물’, 30년 동안 예수를 공부한 박사의 깊이 나오는 ‘역사적 인물’은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동일한 어휘를 발견하는 순간 눈이 번뜩일 수 밖에 없었다.

 
박 신부가 말한 ‘역사적 인물’은 이렇다. 그가 펴낸 예수를 조명한 책 ‘예수’(들녘)은 30년 동안 예수를 집대성 한 이 책은 종교인들이 ‘신학적 측면의 접근이 아닌 예수가 살았던 시대 상황과 유대 민족의 전통 속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나아가 박 신부는 “이미 서양에서는 오래 전부터 예수의 생애 가운데 신화적인 부분을 이성적으로 분석해서 ‘역사의 예수, 신앙의 그리스도’라는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 박 신부 펴낸 이 책의 요점이다.

 
2000년 동안 신자들이나 非신자들을 막론하고 예수에 대한 궁금증에 대해 박 신부는 어떻게 보고 있는지 둘러보자.

 
예수는 왜 ‘나사렛 예수’라고 불려지나?

‘예수’는 우리말, 영어로는 ‘지저스(Jesus)'로 원래의 발음은 ’요수아‘에 가까운데 헬레니즘 문화권으로 넘어가면서 ’이에수스‘가 됐다.

 
‘하느님께서 구원하신다’는 뜻을 가진 ‘요수아’는 당시 유대인들에게 흔한 이름이었기 때문에, 구별을 위해 예수의 출신지인 ‘나사렛’을 붙여서 불렀다, 헬레지즘 세계에서는 히브리어‘메시아’를 헬라어로 번역한 번역어 ‘크리스토스’를 붙여 ‘이에수스 크리스토스’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됐다.

 
역사 속의 예수는?

예수는 신약성서 외에도 7종의 非그리스도교 문헌에 등장한다.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37년~100년)가 지은 ‘유대古史’에 기록되어 있다. 그 책에는 ‘추종자들에 의해 메시아로 받들어진 예수라는 마술쟁이’라고 쓰여져 있고, 유대인 기도문인 ‘바빌론 탈무드’의 이단 배척 조항은 서기 85년에 ‘나사렛 도당들’이 추가됐다.

 
로마시대 역사가 타키투스(55년~117년)의 年代記는 ‘본키오 빌라도 총독에 의해 처형된 그리스도’라는 서술이 들어 있고, 前記작가 수에톤이 지은 클라우디우스 황제(재위 41~54)전기는 ‘크리스토(그리스도)에 의해 선동되고 소요를 야기하는 유대인들’이 기록되어 있다.

 
동정녀(童貞女)마리아와 예수

예수의 ‘동정녀(童貞女) 탄생’의 위대한 인물은 아버지의 힘을 빌지 않고 태어난다는 당시 지중해 세계의 민간 신앙과 관련이 있다.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도 동정녀에게서 태어났다고 전해진다. 예수가 한국 땅에서 태어 았다면 박혁거세나 김알지처럼 알에서 태어났다고 했을지도 모른다.

 
예수의 가족 관계는?

예수는 부모인 요셉과 마리아, 형제인 야고보.요셉.유다.시몬, 몇몇 누이가 있었다. 이들은 나사렛에 살았다. 세례자 요한을 만나고 公생활을 시작하면서 집에서 나온 예수를 어머니와 형제들이 잡으러 오자 그는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고 매정하게 잘랐다. 예수는 형연을 뛰어넘는 진짜 가족 관계가 하느님을 따르는 공동체 안에 형성된다고 가르쳤다.

 
유대인들은 효심이 깊고 부모를 공경했다. 아버지 장례를 치른 뒤에 제자로 합류하겠다는 효자에게 예수는 “죽은 자들은 죽은 자들에게 맡겨두라”며 즉각 자신을 따르라고 다그쳤다.

 
예수의 활동영역은?

예수는 ‘테크톤(기술자)’이었던 아버지의 직업을 물려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히브리어 사투리인 아람어를 사용했던 그는 정식 교육은 거의 받지 못했지만 놀랄만한 율법지식을 갖고 있었다. 이스라엘 북부 갈릴레아 지역 출신인 예수는 갈릴레아 호숫가를 공생활의 활동 중심지로 삼았다. 그는 종종 인근 지역으로도 전도 활동을 갔고, 마지막에 예루살렘에 입성해서 가르침을 베풀고 죽음을 맞았다.

 
예수는 왜 박해를 받았나?

예수가 갈릴레아 일대서 활동할 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추종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진격해 스스로 메시아임을 밝히면서 성전에서 채찍을 휘두르자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은 위기 의식을 느꼈다. 그에게는 처음에 ‘메시아 사칭’이라는 종교적 죄목이 적용됐지만 이것으로는 사형을 시키기가 어렵자, ‘유대인의 왕’이라며 황제를 사칭했다는 정치적인 죄목으로 비뀌었다. 그에게 로마의 사형 방법 중 가장 극형이었던 십자가형이 선고된 것을 그 때문이었다.

 
부활의 ‘신뢰도’는?

예수를 묻은 무덤이 비어 있었고, 예수가 부활해서 제자들에게 나타났다는 증언은 그리스도교 신앙에 흠뻑 젖어 있어 역사성을 가려내기 어렵다. 하지만 예수의 추종자로 몰려서 고초를 당하고 두려워서 도망쳤던 많은 사람이 예수 사후 불과 사흘 만에 목숨을 내걸 정도로 열심인 복음 전도사로 변했다. 그들에게 무언가 놀랍고 대단한 체험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고 이 체험을 1세기 그리스도교회의 ‘부활’로 설명했다.

 
여가까지가 그리스드교의 신자든 非신자든 간에 그 의문점에 대해 30년 동안 예수를 공부한 박 신부가 한 예수의 분석이다. 

 
필자가 그 동안 의문을 가진 예수에 대한 궁금증이 이 책 속에서 일부내용으로 해소된 것 같은 느낌과 필자가 말한 ‘역사적 인물’ 속에 예수가 아니가 하는 아주 위험한 생각에 잠긴다.

 
역시 종교라는 것은 필자가 감히 근접할 수 없는 영역인 것을 스스로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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