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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통영에서 돈 자랑 하지 마라

전 마산 부시장 김종부

전 마산 부시장 김종부 | 기사입력 2016/06/08 [14:12]

[기고]
통영에서 돈 자랑 하지 마라

전 마산 부시장 김종부

전 마산 부시장 김종부 | 입력 : 2016/06/08 [14:12]

 

 

1960년대 통영 당시 지명은 충무시의 자연적인 환경이 이태리 나폴리와 비슷한 조건을 가진 아름다운 도시라 해 통영을 동양의 나폴리라고 불렀다.

 

그때는 수산업이 전성기를 이루고 있었고 일본 남부 지역인 큐슈 등지로 매일 통영에서 자연산 활어를 실은 무역선들이 쉴틈 없이 오가던 때였다.

 

필자가 태어난 통영 한산섬에서 어릴적 여름철에 소먹이러 높은 산에 올라 멀리 거제도쪽 한산만을 바라보면 흰색 빛깔의 활어선들이 오고 가고 하던 모습들을 본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 사진=전 마산 부시장 김종부

아는바와 같이 수산업을 투기사업이라 한다 큰 돈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물고기들은 떼를 지어 다니는 습성이 있기 때문에 바다에서 고기를 몇일 동안 잡지를 못해도 한번만 잘 잡으면 1년 농사를 짓기 때문이다.

 

60년대 당시는 욕지도의 자부포항과 자부랑개가 어업 전진기지였다. 고기잡는 어선들이 낮에는 바다에서 고기를 잡고 저녁에는 기항해 휴식도 하고 어업 작업에 필요한 장비와 각종 재료들을 구매하기 위해 들어오는 곳이었는데 저녁 때는 어선에서 비춰주는 전기불로 불옹성을 이루었고 식당과 술집이 번성했다고 한다.

 

이때 통영지역이 얼마나 살기 좋았던 시절인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당시에 욕지면 파출소장은 농촌지역의 파출소장보다 계급이 한 단계 높았고 힘들어도 인기 있는 자리였다고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수산업이 잘됀 이유도 있었지만 일본과의 수출로 대일 활어선들이 일본 전자제품을 사가지고 들어오는 경우도 있었다는데 어쨋던 60년대는 통영지역이 돈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필자의 어릴적 기억으로는 60년대 중반쯤에 맥주 1병 값이 섬 지역의 논1평 값과 같았다는데 대부분의 통영 사람들이 비싼 맥주를 마시던 시절이 있었다.

 

통영사람들은 돈 벌이가 잘됐기 때문에 맥주를 좋아했지만 다찌집의 푸짐한 술 안주에 성격 또한 풍류를 즐기는 탓도 한몫을 했다고 생각 한다.

 

내일 어려움이 닥칠지라도 오늘은 즐겁게 살자는 그런 여유를 가진 지역의 특수성도 있는 곳이다.

 

지형적인 영향인지 모르지만 그래서 통영에서는 지난날 유명한 예술인들이 많이 배출 되었다.

 

문학분야에 유치환과 유치진, 토지작가 박경리, 시인 김춘수, 미술분야 김형근, 이한우, 전혁림, 음악분야 윤이상등 다양하게 훌륭한 인물들이 배출돼 통영을 예항도시로 이름을 알렸다.

 

조선시대에는 삼도수군통제영이 위치한 우리나라 수군의 총본부였고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선조들의 피가 흐르고 있는 역사의 현장이기도하다.

 

반세기 전 통영에서 돈 자랑 하지 마라던 자랑스러운 유행어가 이제는 옛말이 되었고 최근에는 수산업. 관광산업과 함께 통영 경제를 쌍끌이를 하던 조선산업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어 통영이 고향인 필자로서는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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