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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탐방]벽방산 안정사, 현존 5곳 등 12개 암자
원효암 등 7곳 손실된 암자 터 존재

김병록 발행인 | 기사입력 2013/09/08 [16:13]

[역사탐방]벽방산 안정사, 현존 5곳 등 12개 암자
원효암 등 7곳 손실된 암자 터 존재

김병록 발행인 | 입력 : 2013/09/08 [16:13]

 통영의 문화유산인 천년고찰 벽방산 안정사에는 현존하는 암자는 의상암을 비롯한 가습암ㆍ의상암ㆍ은봉암ㆍ천개암ㆍ사계사 5곳의 암자가 있다.
 
구전으로 전해오는 총 9곳의 암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접하고 본지는 벽방산의 지리를 누구보다는 잘 알고 있는 주민과 함께 그 역사의 현장속으로 역사탐방에 나섰다.
 
첫째날 벽방산 중턱 기존의 등산로에서 벗어나 아무도 닿지 않았을 것 같은 길에 숲을 헤집고 들어서자 거짓말 처럼 아직까지 살아있는 천년전 고승들이 왕래 했을 것으로 보이는 원효암을 향하는 길이 나타났다.
 
벽방산을 중턱을 가로지르는 산행을 하고 있자, 대략 은봉암과 의상암의 중간지점에 다다르자 선명하게 대나무 숲과 여기저기에 돌담들 일부가 그대로 보존되고 있는 현장를 발견했다.
 

▲음봉암과 의상암 중간지점에서  흔적이 발견된 '원효암' 터     © TYN



역사탐방에 동행한 이곳 마을 주민은 바로 이곳이 고승인 원효대사가 창건 했을 것으로 보이는 원효암 터라고 자신있게 말하자, 순간 본지 기자와 동행한 일행들은 발을 멈추고 천년전의 역사의 현장에 서 있다는 사실을 직감했을때 그 희열은 아직도 채 가시지 않고 있다.
 

▲ '원효암' 터에 있는 비석으로 보이는  돌  © TYN



그 역사의 생생한 현장 속에는 고승 원효대사가 참선을 하면서 사용했을 것으로 보이는 우물터는 아직도 그대로 보존되고 있었다. 또한 그 우물가에는 현대사회에서 사용되고 있는 플라스틱 바가지가 있는 것으로 봐 누군가가 사용하고 있는 흔적을 알 수 있었다.
 

▲ 원효대사가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우물가
    한 시민은 이 무물가의 물을 매일 마시고 불치의 병인 암을 치료했다고 전해진다.     © TYN



동행한 주민의 말에 따르면, 이곳 원효암 터 우물가는 몇몇 주민이 왕래를 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이중 한 시민은 불치의 병인 암으로 고생을 하다다 이곳 원효암의 약수물을 마시고 완쾌 했다는 것에 놀란 나머지 신비로움 마져 느겼다.
 
현존하는 의상암과는 불과 100여미터를 거리를 두고 있는 원효암 터와 의상암은 아직도 천년전 고승들이 왕래를 한 흔적들이 그대로 간직되고 있어 그 길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는 것에 경이감 마져 들었다.
 

▲ 1,400여전의 역사가 숨쉬고 있는  '운효암 터' 역사의 현장 © TYN



대략 원효암은 언제 창건이 되었는지는 역사기록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바로 인근에 있는 의상암은 신라 문무왕 665년에 의상대사가 창건을 한 기록을 볼때, 아마도 이 원효암은 의상대사의 스승인 원효대사가 창건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봐 그렇다면 의상암 보다도 훨씬 그 역사는 긴 것으로 해석할 수 있어 그 역사적인 가치는 불 보듯 하다.
 
1348년 전, 의상암의 역사를 훌쩍 뛰어 넘었을 것으로 봐지는 원효암 터의 역사적인 가치는 통영의 문화유산임은 분명하다. 무엇보다는 역사적인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현대사회에서 통영시는 원효암 재건을 고려해 봄직하다.
 
다음날 본지 기자를 비롯한 일행들은 안정사에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있는 나머지 암자에대한 역사탐방에 나섰다. 안정사에서 은봉암으로 향하는 등산로 100여미터 주변 지점 왼편에 역사 속에 누군가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돌담들이 이곳 저곳에 늘려 있었다.
 
바로 이곳이 그 유명한 고승인 성철스님이 5년 간 머물렀던 곳으로 성철스님은 이곳에서 초가 3채와 토굴을 지어 그 토굴을 천재굴이라 하여 이곳에서 참선을 하였다고 한다.
 
초가 3채는 흔적만 남아 손실이 되어 있었고, 천재굴의 흔적을 찾기 위해 일행들은 나섰지만 우거진 숲으로 접근을 할 수 없는 안타까운 순간도 있었다.
 

▲ 5년간 성철스님이 참선을 하면서 기거한  것으로 보이는 ,초가 3채가 있었던 역사의 현장    © TYN



5년간 성철스님 머물렀던 이곳에서 성철스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누구든지 삼천배를 해야 만날 수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불교계의 그 유명한 '삼천배'가 이곳 벽방산 안정사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은 또 하나의 통영시의 소중한 문화 자산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 불과 얼마되지 않은 성철스님이 머물렀던 초가 3채와 참선한 그 천재굴은 역사속에서만 숨쉬고 있을 뿐, 그 역사의 현장은 손실된 채로 내버려 두고 있는 것은 통영시를 떠나 대한민국 불교계의 손실로 이어진다.
 
현대 불교계의 거장 성철스님, 그 성철스님이 머물렀던 이곳, 불교계의 그 유명한 삼천배가 시적된 이곳은 역사 문화적인 가치는 통영시의 큰 재산이다. 이 현장의 복원을 서두러는 것은 통영이 관광명소를 하나 더 얻는 소중한 가치다.
 

▲ 벽방산 기슭 곡곳에 흔적이 있는 암자 터    © TYN



이 주변으로 역사 속에서 손실된 암자인 소올암ㆍ만월암ㆍ만리암ㆍ반아암ㆍ옥지암ㆍ장의사 등이 있다. 그렇다면 알려진 9개 암자를 넘어서는 12곳의 암자가 벽방산 기슭을 주변으로 존재했던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 외에도 벽방산 안정사 역사탐방에서는 당시 스님들이 생계의 곡식을 재배한 흔적을 알 수 있는 숲속의 논농사와 밭농사의 흔적을 알 수 있는 물대는 수로가 일부 보존되고 있는 그 현장에는 역사 사료의 가치가 즐비하다.
 
통영시는 방치되어 있는 이 역사의 귀중한 현장들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역사현장의 재건이 급선무다.
 
본지는 구전으로 전해오는 것에 착안되어 역사탐방에 나섰지만, 벽방산과 안정사의 역사에 대한 자료와 문서들이 존재할 것으로 내다봐 학계나 불교계에 역사 사료가 수집되는 데로 독자들을 찾아뵙기로 한다.
 
본 기사에 기록된 것은 역사의 객관적인 고증을 거친 것이 아니라 구전으로 전해오는 사실을 기초로 기록되었다는 것을 미리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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