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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차영한 시인의 글 ‘글은 얼굴이기 때문에’에 대한 답변

김보한(시인, 문학평론가)

시사통영 | 기사입력 2021/09/29 [15:20]

기고/ 차영한 시인의 글 ‘글은 얼굴이기 때문에’에 대한 답변

김보한(시인, 문학평론가)

시사통영 | 입력 : 2021/09/29 [15:20]

▲ 김보한(시인, 문학평론가)   © 시사통영

본 기고문은 필자의 글 <‘꽃으로 뿌리내린 당신들여다보기>(이하 들여다보기라 한다)에 대해 차영한 시인이 글은 얼굴이기 때문에’(한산신문, 2021.9.16.)를 기고했기에 답변을 요하고 있고 해야 할 상황이라 될수록 짧은 지면을 빌어 일부만 해명하고자 한다.

여기에 관련하여 <연구>는 놔두고라도 <공부>도 안 통하니 하품만 나올 수밖에 없다는 필자의 심정을 띄어 보낸다.

먼저, 고두동의 추모관련에 도남동 일대 사는 그들의 후손들이 예의 주시해서 추모를 한다는 것인지 필자에게 겁박을 하는 건지 애매모호하다. 고두동의 친일근거는 기존연구자들에 의해 나타나고 아주 가까운 예로서 다음(Daum) 웹문서 황산 고두동(Koh Du Dong) 내용에 뚜렷이 최소 16년 정도 올찬 친일 행각을 줄기차게 드러낸 것을명확히 공지시키고 있으며 이 부분은 학계에서 보편적인 사안임을 말씀드릴 수 있다. 그리고 박태일의 경남 지역문학 부왜활동속에 경남북지역 여러 연초조합에서 일하고 (총독부 기관지였던 매일신문)에 왜국의 단가까지 왜말로 활발하게 창작하였다고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으며 부산일보 1997326일자 기사 란에 의하면 고두동은 (친일문제와) “전두환 정권 출범시 정권 찬양시를 쓴 전력으로 고두동문학비 철거를 지속적으로 주장하고 시민단체와의 연계움직임도 보이고 파문이 확산되었다고 했다. 차영한 시인(여기에서 이전 글에 김보한 씨라고 썼다고 해서 필자도 차영한씨라고 쓰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않기로 한다. 이 대목에 이르러서 정작 글은 얼굴이기 때문에가 실감나게 느끼도록 한다.)<주관적인 감정이 앞서면 관점이 흐려지기 마련이다>라고 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음을 밝혀두는 바이다.

다음은, 최천(최학기)에 관련하여 다시 말하지만 필자는 그에 관해 일제강점기에 공헌한 바가 크다고는 했다. 이 외에 해방 후 제주 4·3사건 무력진압을 주도[먼저 최천 제주감찰청장이 4.3사건을 두고 국제공산주의자들이 사전에 계획한 폭동이라며 사태를 진압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병력을 동원해 군경 합동작전을 펴야 한다고 주장했다-출처 : 통일뉴스(http://www.tongilnews.com)] 하였고 같은 해 여수·순천 1019일 사건 경비사령관(한 가지의 예 : 무고한 박찬일 검사 처형사건-여순사건이 터지자 그 혼란을 틈타 박 검사를 체포해 재판도 없이 즉결 처형해 버린 것이다. 박 검사 총살은 전남경찰청 부청장 최천의 주도로 이루어졌고 당시 진압군 제5여단장 김백일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강행되었다.-오마이 뉴스 2021.09.01. <빨갱이로 몰린 박찬일 검사의 억울한 죽음>)으로 파견된 것에 관해서 이념 갈등을 치유하는데 경찰직의 소명이라 했는데 그렇게 단순하게 보기에는 한참 거리가 멀다는 뜻이다. 이에 관련하여 밝혀진 내용은 그 당시 제주 4·3사건은 국제공산주의도 없었고 명명백백하게 양민학살(당시 제주 160여 마을 중 130여 마을에서 학살이 일어났고 당시 제주도 인구 10% 3만여 명이 학살당했다는 보도자료를 접할 수 있다.)에 적극 주도했다고 드러난 현실을 대할 때 추모대상으로까지 애써 포함 시키는 것은 한참 무리수를 두었다는 생각이라는 내용이다. 그리고 최천은 시조문학 활동 분야라고 하는데 시인이라고 칭하기엔 발표작품 수에 관련해서 보드래도 한참 미흡하다.

결국, 위의 두 분은 본인을 위해서라도 차라리 추모의 구성원에 드러내질 말았어야 할 일을 저질렀다는 생각에 다다라서는 아프다.

 

다음은 소제부의 치상아는 유치상의 필명이다. ‘치상아중의 치상은 유치상의 이름자이다. 부산일보 1997131일자 <박철석 시인 청마의 새얼굴 찾기발간> 내용 중에 박철석 시인은 "생전에 청마선생께 소제부를 갖고 있다고 말씀드렸더니 그걸 갖고 있느냐며 의아하고 반가운 표정으로 반문하셨다"고 기술했다. (생전 박철석 교수에 의하면 청마 유치환에 의해 치상아는 유치상의 필명임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박철석 시인은 책에 수록될 미발표 초기시 29편은 청마가 스물 두 살 때(1930) 동심, 치상아(본명 유치상:청마의 계씨), 장춘식 들과 일본 동경에서 발행한 동인지 소제부에 선보인 시 26등에 관해서 발표하면서 치상아는 유치환의 아우 유치상임을 분명히 했다.

전체적으로 볼 때 필자가 지적한 얼핏 몇 가지만 드려다 보기에서 탁상수의 <조선문단> 발표나, 고두동의 등단 시점, 최두춘의 생리 1동인 등록, 박영포는 부산사람인 점, 유치상의 발표지면 추가 등은 명백한 사안이다. 그런데 애써서 지적해준 이분들은 거론하질 않고 딸랑 최천 시조시인님은 생리지 동인이 아니다. 책임자로서 업무 착오임을 밝힌다고 최천만 지면에 거론하고 있는 점은 아쉽다. 여러 곳 틀린 것을 보면 업무 착오로 보기에는 그렇다는 생각에 미친다. 공부는 작은 힘이고 연구는 큰 힘이다. 그 외 관련은 올찬 공부가 필요하다. 지면관계상 훈수는 마무리하고 끝맺음을 하기로 한다.

 

마지막으로 차영한 시인의 글 말미에 통영시지(2018. 2.)’ 운운에 대한 내용은 도체 무슨 의도인지 모를 일이다.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것도 아니고 뜬금없는 내용을 접하면서 아무리 지면이 남았어도 할 말 잘못했다고 생각된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해당자를 잡아서 추궁을 하던지 본질을 밝히던지 차영한 시인 본인의 뜻대로 하면 될 일을 본 기고문에 포함시킨 것은 큰 우를 범했다고 느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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